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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란 무엇인가

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추천 도서​ / 암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라이프김동우 2026. 3. 13. 20:10

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추천 도서

암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

 
 

한다고 했는데 무엇을 했을까?

1991년, 서른 즈음의 혈기 왕성한 젊은 의사가 종양내과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가슴에 품었던 원칙이 있었다. ‘환자와 만나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그에게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그로부터 35년, 폐암과 두경부암 등 치료가 어려운 암의 최전선을 지켜온 서울성모병원 강진형 교수가 정년을 앞두고 질문을 던진다. “한다고 했는데, 과연 무엇을 했을까?”

『암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는 ‘치료’라는 이름 아래, 생의 마지막 구간을 함께 걸어온 한 종양내과 의사의 정직하고 담담한 성찰이다. 완치의 기쁨보다 치료의 한계 앞에서 무력했던 순간들, 환자에게 전했어야 했지만 끝내 삼켜야 했던 말들, 그 고요한 기억들이 더 오래 남았다.

폐암으로 떠난 누님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 『고래사냥』, 『별들의 고향』의 작가 최인호 형님과의 인연, 〈서울의 봄〉 속 정우성 배우가 연기한 이태석 장군의 실제 인물 장태완 장군과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까지 임상시험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환자들의 간절함까지.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은 암을 ‘정복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함께 지나야 할 삶의 과정’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가운을 벗으며 건네는 그의 고백은 병원이라는 차가운 공간을 넘어, 우리 삶의 가장 뜨거운 지점들을 관통한다.

『암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는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서 기록된 이야기이자, 의사와 환자가 함께 지나온 시간을 담은 진심이 담긴 기록이다. 암 환자와 가족, 의료진,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모든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40년간 의사로 일했고, 그중 35년을 암 환자 진료에 썼다. 암을 치료한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초심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뭘 얼마나 했는지는 미지수다. 후회는 남지 않았는데, 환자의 이야기들이 계속 가슴에 남아서, 이 책을 썼다.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석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의대 성모병원에서 수련하여 종양내과 전문의가 되었고, 이후 35년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암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1996년부터 2년 반 동안 미국 코넬대학교 의대에서 연구강사를 지냈고, 이후 MD 앤더슨 암센터와 폭스 체이스 암센터에서도 단기 연수를 했다.

지금까지 200여 건의 임상시험에 연구책임자 또는 연구자로 참여했고, 300편이 넘는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이며,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와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 국가신약개발사업단 투자심의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한 항암요법연구회 회장, 대한두경부종양학회 회장, 대한폐암학회 회장을 지냈다.

또한 병원 밖의 세상에도 관심이 많아, 지난 2018년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의 EMBA 과정을 졸업하였다. 최근에는 대학병원 교수로서의 인생 1막을 마무리하고, 의학과 비즈니스가 만나는 인생 2막을 계획하고 있다. 의학의 여러 측면에 관한 글도 더 쓰고 싶다.

  • 프롤로그: 한다고 했는데 무엇을 했을까?

  • 제1장. 암에 대해 알게 되기까지: 여정의 시작
  • ○ 폐암 진단, 그 시작의 기록
  • ● 임상시험의 기틀을 다지다
  • ○ 어머니의 빚이 나의 빚으로
  • ● 암 치료 어벤져스
  • ○ 세계의 시선이 머물다: 전 세계의 폐암 전문가들이 서울에

  • 제2장. 암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차마 전하지 못한 말
  • ○ 이제서야 다 읽었습니다
  • ● 성직자도 결국 사람이다
  • ○ 짧지만 강렬했던 서울의 봄
  • ● 원칙과 예외 사이- 공직자의 고뇌
  • ○ 진료실 밖에서 흘린 눈물
  • ● 낯설지만 낯익은 풍경
  • ○ 내 의지와 뜻대로 되지 않는 일
  • ● 섬진강 송림(松林)의 추억

  • 제3장. 암 치료, 한다고 했는데: 치열했던 과정의 기록
  • ○ 편도암,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한가요?
  • ● 한꺼번에 4개의 암에 걸렸다면
  • ○ 같은 암, 다른 처방-ALK 양성 폐암
  • ● 가장 많이 치료했던 암-EGFR 양성 폐암
  • ○ 가슴 부위, 폐암 말고 다른 암이라고요?
  • ● 면역으로 극복한 암
  • ○ 부작용 치료도 암 치료의 일부
  • ● 환자가 보는 임상시험
  • ○ 흑색종은 마이웨이

  • 제4장. 암 치료에 끝이 있을까: 마침표 없는 여정
  • ○ 인생은 돌고 돈다
  • ● 가는 사람, 남는 사람
  • ○ 환자들이 더 오래 사람답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 ● 아이들에게는 늘 더 마음이 쓰인다
  • ○ 암 환자의 임신과 출산
  • ● 암만 치료해서는 안 된다
  • ○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할 환자들에게

에필로그: 가운을 벗으며 건네는 마지막 인사

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하루도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던 환자들을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었던 암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만난 모든 환자들은 나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많은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양내과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한 탓일까. 그 많은 보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이쯤에서 인생 1막은 마무리하고자 한다. 암을 치료한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암을 치료)한다고 했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환자에게 집중하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 한다고 했지만, 환자들에게 그 마음이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암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들이 나로 인해 더 힘들었던 경우는 혹시 없었는지 두렵다.

아무튼 나는, 주어진 여건 안에서, 할 만큼 했다. 그래서 이제 막을 내리는 인생 1막에, 후회는 남지 않았다. 그저, 이 책에 소개하는 몇 개의 이야기들이 남았다. _프롤로그: 한다고 했는데 무엇을 했을까? 中

2005년 2월, 서울성모병원에 폐암 다학제 협진팀을 꾸려 첫 진료를 했던 날이 기억난다. 이제 미국에서 배워온 선진 의료 시스템을 도입할 생각에 의욕 충만했던 나와, 다학제 협진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도 일단 ‘모이라고 하니’ 모인 흉부외과, 호흡기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병리과의 동료 의사들, 그리고 전문 간호사까지 7~8명이 비좁은 핵의학과 의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다학제 협진 도입 초기에는 지정된 회의실도 없어 그 시간에 비어 있는 곳을 찾아 회의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의 협진 진료 시간 동안 쭈뼛대던 동료 의사들과 전문 간호사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활발히 의견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의료진들끼리만 모였었지만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환자나 보호자가 원할 경우 협진에 직접 참석해 궁금한 점을 묻고 의료진의 설명을 듣는 기회도 마련되었다. 약 1년 뒤, 폐암 다학제 협진은 병원 진료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고, 2006년에는 두경부암 다학제 협진팀도 가동하게 되었다. _제1장. 암에 대해 알게 되기까지: 여정의 시작 中

“후두암으로 아프기 전 3년이 저희 가족에게는 꿈 같은 시간이었어요. 저희 아저씨가 정신을 차리고 건설회사를 하면서 가정에 충실했었거든요.”

그러다 덜컥 찾아온 후두암으로 18년이라는 세월을 병마와 싸우며 아내를 많이도 힘들게 했다. 암 진단을 받은 뒤에는 30년간 하루 두 갑씩 피워오던 담배를 단번에 끊었고, 밖에 모임이 있어도 식사는 꼭 집에서 하려고 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아내는 늘 정성껏 집밥을 준비했다.

자녀들이 장성해 독립한 뒤에는 지인들과 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게 했고, 후두암 발병 이전에는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남편을 데리고 섬진강변의 송림공원으로 매일 오후 1시면 산책을 나섰다. 겨울에도 예외는 없었다.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음식을 목으로 넘기기 힘들어하던 이대준 씨를 위해 직접 죽을 끓이고 곱게 갈아 먹였다.

서울성모병원에서는 환자식으로 나오는 음식과 과일이 모두 걸쭉하게 갈려 나와서 그나마 아내분이 덜 힘들었다고 했다. 2022년 11월, 코로나 감염 이후 발생한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환자가 답답함을 호소하자 연고지 인근의 광양서울병원으로 전원하게 되었다.

그 병원에서는 흰죽만 나와 식사 해결이 어려웠고, 아내는 결국 매일 차로 30분 거리인 하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전복죽, 참게가리장죽, 새우죽 등을 끓여 믹서기에 곱게 갈아 날랐다. _제2장. 암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차마 전하지 못한 말 中

방사선 치료와 면역항암제 투여를 통한 항암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환자가 방사선 치료는 득실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원하지 않았고 비급여라 하더라도 부작용의 고통이 적은 면역항암제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면 더 좋았겠지만, 현재로서는 항문 점막의 악성 흑색종에 대한 면역항암제 보조 투여는 전액 환자의 자비로 투여해야 한다.

다행히 환자는 경제적인 여건에 문제가 없다고 해, 큰 부담 없이 면역항암제 투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간 펨브롤리주맙을 3주 간격으로 투여한 뒤 환자는 3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재발이나 전이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처음 진단을 내리고 수술을 집도했던 이인규 교수님도 몇 번이나 “신기하고 놀라운 경우”라고 말할 정도로 경과가 좋다.

드문 암인 악성 흑색종, 그중에서도 더 발생 빈도가 낮은 점막 흑색종은 처음에는 면역항암제나 항암제에 잘 반응하다가도 어느 순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급발진하기도 하고 치료에 말을 잘 안 듣다가 다시 잠잠해지기도 하는, 치료를 할수록 참 도깨비 같은 암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자기만의 ‘마이웨이’를 가는 듯하지만, 아직의 과학으로는 다 이해하지 못한 신비롭고 이상한 도깨비다. 이 도깨비의 진짜 정체가 가까운 미래에는 속 시원히 밝혀지길 기대해본다. _제3장. 암 치료, 한다고 했는데: 치열했던 과정의 기록 中

흔히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 암은 근치적 치료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환자의 경우 직장의 원발암과 폐 전이암 모두에 잘 반응할 수 있는 선행 항암 요법, 즉 이리노테칸·5-FU·옥살리플라틴의 3제 병용 요법으로 직장과 폐의 암 크기를 모두 줄인 뒤 수술을 시행했다.

이후에도 남아 있을 수 있는 재발 위험은 국소 방사선 치료와 보조 항암 치료로 최소화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재발 없이 지내며 이제는 직장암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항문 괄약근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기에 장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필요도 없었다. 이런 치료가 가능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은 바로 다학제 협진이었다.

처음 진단과 함께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맡아주신 호흡기내과 교수님, 먼저 수술하겠다고 나서지 않고 기다려주신 대장항문외과와 흉부외과 교수님들, 수술 후 보조 치료에서 역할을 충실히 해주신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님, 그리고 종양내과의 나와 치료의 목적과 취지를 잘 이해하고 끝까지 따라와 준 환자까지, 모두가 ‘다학제 협진팀’의 일원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암을 없애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환자의 남은 삶까지 함께 걱정하고 고려하는 것. 그 환자가 좀 더 사람답게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항암 치료에 담아본다. _제4장. 암 치료에 끝이 있을까: 마침표 없는 여정 中

형님은 항암 치료로 손톱이 빠졌 나갔을 때에도 골무를 끼고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는 옛 방식을 고수하셨지만, 형님의 글에는 늘 새로움과 혁신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옛 방식을 고수하면 ‘꼰대 같다’고들 하지만, 형님에게는 그런 꼰대스러움이 전혀 없었어요. 형님의 그런 새로움이 제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 죽고 싶다.”

골무를 끼고 얼음 조각을 씹어가며 글을 써 내려간 형님의 삶에 대한 지독한 열정을 조금이나마 본받고 싶습니다. 맹목적인 집착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와 그것을 향한 분명한 로드맵이 있는 열정이요. 2010년 초, 첫 항암 치료의 마지막 6차 치료를 위해 입원하셨을 때가 종종 떠오릅니다.

막 동이 터오는 새벽 6시 반쯤 21층 병동 회진을 돌며 병실에 들어가면, 형님은 갑갑한 1인실에서 나와 병실 밖 창가에 나와 앉아 계셨죠. 미세먼지 낀 잿빛 하늘 아래 빽빽한 고층 아파트 숲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오랫동안 서울에 살았지만 이 도시가 낯설게 느껴지는 타인과 같은 자신을 쓸쓸함으로 바라보던 형님의 모습. 아마 그때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란 책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으신 게 아니었을까요? …… _최인호 형님에게 보내는, 주치의 강진형 교수의 편지 中

‘단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던’ 여정,

그 길목마다 새겨진 간절한 이름들

암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삶의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환자에게는 단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하는 의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종양내과 의사의 진료실은 매일같이 ‘나쁜 소식’이 오가며, 희망과 절망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교차하는 공간이다.

저자는 그 치열한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과 마주해왔다. 암이라는 병은 단순한 질환이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경험이며,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깊은 고립과 절망으로 사람을 몰아넣는다. 몸의 통증보다 더 깊은 고독의 시간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자는 환자들과 함께하며, 의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정교한 의술이나 신약 이전에 ‘곁에 머무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로는 오르막을 함께 오르고, 때로는 절벽 끝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 이 책은 그런 ‘동행의 기록’이다.

암이라는 질병을 통해 오히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다

『암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는 죽음과 고통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암을 통해, 오히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암은 삶을 파괴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때때로 삶의 본질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항암 치료의 고단함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환자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감사를 느꼈던 그들의 말과 행동은 저자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저자에게 이들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자신보다 앞서 인생의 굽이진 길을 지나간 삶의 스승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걱정하고, 자신보다 타인의 아픔을 먼저 돌아보던 이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적을 만드는 의술보다 귀한 것,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의사의 진심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면역항암제, 정밀의료, 다학제 협진, 임상시험까지. 새로운 치료법이 속속 등장하지만, 병의 한가운데 선 환자들은 여전히 고립되고 외롭다. 저자는 의사로서의 냉정함과 인간으로서의 연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환자의 곁을 지켜왔다. 임상시험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마지막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시간들. 치료라는 이름으로 환자의 삶을 어떻게든 붙잡고자 했던 치열한 순간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폐암, 두경부암, 희귀암, 말기암 등 다양한 사례들은 단순한 의학적 기록을 넘어, 하나의 인간적인 서사로 펼쳐진다. 가까운 이들을 환자로 마주해야 했던 고통, 치료의 성공과 실패 앞에서 흔들렸던 감정, 책임과 죄책감 사이에서 버텨야 했던 시간. 의사로서의 사명과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담담하게 드러난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진심이었고, 흔들렸기에 더 치열했던 35년의 기록. 『암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온 한 의사의 기록이다. 오늘도 병과 싸우는 이들에게는 조용한 위로를, 삶의 유한함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출처:네이버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