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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일기

[스크랩] <유익현님의 암 극복 사례> 간경화, 간암, 폐와 갈비뼈 전이 암, 중증 아토피 피부염까지

라이프김동우 2014. 10. 21. 15:03

 

 

 

<유익현님의 암 극복 사례>

간경화, 간암, 폐와 갈비뼈 전이 암, 중증 아토피 피부염까지

 

"간경화, 간암, 폐와 갈비뼈 전이암, 중증 아토피와 싸웠던 투병기이니 읽어보시고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마시고 환우님들 희망을 얻고 완치를 기원합니다."   

☞ “살 수 있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발단은 간염이었다. 그것이 훗날 큰 화근의 싹이 될 줄은 짐작조차 못했었다. 간염에서 간경화로, 간암에서 폐와 갈비뼈 전이 암으로 

그것도 모자라 밤마다 잠을 설쳐야 하는 전신 중증 아토피 피부염까지.속수무책 진행되는 암세포의 맹공 앞에서 의사는 점점 할 말을 잃어갔고, 가족들은 몰래몰래 눈물을 훔쳤다. 누가 봐도 힘든 싸움. 그래도 저는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 간염, 그것쯤이야?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30대 초반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헌혈을 했는데 비 활동성 B형 간염 보균자로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저는 ‘그까짓 것’했다. 별다른 증상도 없었고,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 한 잔 하는 기쁨도 맛보고, 생활에서도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 정확히는 40대 초반의 어느 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날도 퇴근길에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맥주잔을 기울이던 저는 깜짝 놀랐다. 언제나 술술 잘 넘어가던 술이 한 모금도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마시기만 하면 구역감이 일어났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저는 날이 밝자마자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간염이 만성으로 진행됐다면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북대학교 병원에도 갔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기적인 검사를 꼭꼭 해야 하고, 치료약도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

 

이때부터 나는 병원에 다니는 틈틈이 간염에 좋다는 약, 민간요법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기 시작했다. 최고의 간 전문가도 만나보고, 좋다는 민간비방도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입으로만 먹으면 나을 줄 알았다. 생활 자체를 바꾸지 않으니 간경화로 진행되더니 2001년 초 간암 진단으로 나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어놓았다. 그것은 내 나이 54세(2001년) 때의 일이었다.

 

 

☞ 간암 진단, 그러나 간경화 중증으로 수술은 불가?  

2001년 봄 어느 날, 그날은 정기 검진 날이었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CT를 한 번 찍어보자고 했다. 일주일 후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이번에는 좀 이상 징후가 보이니 MRI도 찍어보자고 한다. 결과를 보고 하는 말이 “간에 1.8~2cm 정도의 암세포가 생겼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간의 가장자리에 암이 붙어 있으니 수술로 떼어내면 괜찮다는 것이다.

 

암이라는 말에 놀란 가슴은 조금 진정이 되었다. 수술하기 위해 곧바로 입원을 했다. 숱한 검사가 이어졌고 수술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담당의사가 찾아와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암세포가 간의 뒤쪽 가장자리에 붙어 있어서 옆구리까지 절개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큰 수술이 된다는 거였어요.”

 

결국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색전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색전술은 결코 치료의 끝이 아니었다. 1차 색전술을 받고 한 달 후 병원에 갔더니 다시 암이 생겼다며 색전술을 또 해야 한다고 한다. 안되겠다 싶었다. 큰 병원에 가보자며 서둘러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 아산병원에서 2차 색전술을 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됐던 걸까요? 2차 색전술을 마치고 난 뒤에는 통증이 너무 심하고 입맛이 똑 떨어져 밥 한 톨 삼킬 수가 없었어요. 한 끼에 2~3숟가락도 먹지 못한 상태로 한 달 정도 지나니 몸이 해골처럼 변해 체중이 한달에 14kg이나 빠지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암세포보다 못 먹어서 죽게 생겼다며 사방팔방으로 수소문 하고 다녔다.

 

그런 정성이 통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식이요법으로 간암을 이겨낸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사람으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바보죽을 먹으면서 바보처럼 살다!  

“간경화, 간암, 담도암, 문맥암, 말기에 황달, 복수, 흑달까지 병원에서 2~3개월 선고를 받았는데 이 어려움을 이겨낸 분(문효진님)을 만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제 블로그 말기암 극복 체험수기가 문효진님 글임)

 

그 분은 광주의 한 약사님을 소개해주면서 바보죽 요법을 꾸준히 따라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만난 약사는 바보죽을 쑤어 먹으면서 반드시 바보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죽을 쑤는 방법도 일러주었다. 멥쌀현미+찹쌀현미+쥐눈이콩(약콩)+율무+검은 참깨를 죽으로 쑤되, 소금 간을 하지 않는 무염식이어야 하고 먹을 때는 반드시 100번 이상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조한 말, “늘 바보처럼 웃으면서 헬레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금 간도 안 한 무염죽을 먹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넘어가지가 않았다. “죽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는 물로 삼켰어요. 억지로 먹어서인지 소화도 잘 안 돼 바로 설사를 해버리더군요. 이렇게 며칠 지나니 항문이 헐어버릴 정도였어요.”

 

그래도 먹어야 살 수 있다며 애원하는 아내 앞에서 억지로, 억지로 죽을 삼켰다. 그렇게 10일 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잃어버렸던 입맛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바보죽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몸은 바로 회복 기미를 보였다. 누렇게 보였던 얼굴의 황달기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매월 한 번씩 병원에 가서 하는 혈액검사에서도 뚜렷한 반응이 감지되었다. 알부민 수치도 좋아지고 암수치도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살 것 같았다.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쳐 지나가던 TV의 한 장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건강보조식품으로 암을 이길 수 있다는 보도였다. 실제 사례도 소개되었다. 마음이 혹했다. 특히 하지 말라는 금기사항도 별로 없어 더 매료됐다. 그래서 바보죽 요법 대신 B모 식이요법을 10달 동안 열심히 따라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났어요. 얼마 되지 않아 간암수치는 확확 올라갔고, 병원에서는 암이 재발됐다면서 다시 색전술을 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결국 세 번째 색전술을 했다. 그래도 암 수치는 떨어질 줄 몰랐다. 의사는 또다시 색전술을 하자고 했지만 나와 내 아내는 망설였다. 그 즈음 겨드랑이를 만지면 칼로 베이는 듯 선득선득 느껴지는 기분 나쁜 느낌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 폐와 갈비뼈로 전이된 암… 수술도 힘들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목 안에 든 가시처럼 하루하루가 불편해서 나는 서울로 향했다. 그동안의 지방병원 진료 차트를 챙겨 서울대학병원에서 진찰을 하고 약 일주일 후 저녁 늦게 입원을 했다. 간호사께서 바로 가슴 사진부터 찍으라고 한다. 찍은 가슴 사진 결과는 다음날 주치의 선생님이 출근해서 알게 되었다. 사진을 보고 있던 선생님께서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간암세포가 폐로 전이된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결과를 위해 아침부터 할 수 있는 검사를 다했다. 결과는 아주 절망적이었다. 

정밀 검사결과는 폐와 갈비뼈로 전이암(5cm)이 발견된 것이다.“수술을 꼭 원하면 해줄 수는 있지만 그 가능성은 30% 이하”라면서 “수술을 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숨 막히는 몇 시간이 흘렀다. 죽고 사는 문제다보니 수술 결정을 아무도 선뜻 이야기 해주지 못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어쩌면 내 인생이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그전에는 간암이라고 해도 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머릿속으로 몇 번 죽어도 보고 살아도 보고 하면서 내린 결론은… 수술은 하지 말자고 아내와 결론을 냈었어요.”

 

그 대신 나는 이 악물고 결심한 게 있었다. 절대 이 병으로는 죽지 않겠다는 오기였다. 어떻게든 낫게 해보리라! 수술을 포기한 나는 ‘어떻게든 낫게 해보겠다.’는 오기를 품고 의사에게 물었다. 수술 대신 할 수 있는 게 뭔지?. 담당의사는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그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나는 목숨 걸고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 있었다.

 

“전에 하다가 너무 힘들어 포기했던 바보죽 식이요법을 다시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느슨한 마음으로 투정도 부려가면서 실천했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먹기 싫어도, 맛이 없어도 무염 바보죽을 맛있다고 하면서 먹었고, 기쁘지 않아도, 힘들어도, 독한 마음으로 시도 때도 없이 웃었어요.”

 

나는 지금도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 열고 거실로 나오면서 '하하하' 큰소리로 한참동안을 웃기부터 한다. 병원에 있을 때 나를 위해 아내는 새벽부터 일어나 죽을 쑤어 병원으로 날랐고, 개다리 춤도 함께 추면서 웃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18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병원에서도 바보죽 식이요법을 죽을힘을 다해 실천했다. 폐에 생긴 암세포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다.

 

퇴원할 때 “검사를 해보니 암 덩어리가 1~2mm 정도 줄어들었다고 하더군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한두 달 만에 암세포가 없어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사의 말을 듣고 퇴원을 했어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으니까요.”

 

퇴원을 한 뒤로는 더 철저히 바보처럼 살았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 열고 나오면서 하~하~하~ 웃음소리로 온가족을 깨웠고 소금 한 톨 안 들어간 무염 바보죽을 150~200번씩 꼭꼭 씹어서 먹었다. 죽을 먹으면서도 유행가 틀어놓고 박자 맞추며 따라 부르고, 어깨춤을 추면서 하루 5끼 죽을 먹었다.

 

틈틈이 영양제 주사와 알부민주사 맞기, 녹즙 마시기, 영양식으로 붕어 즙 먹기도 병행했다. 모든 것 내려놓고 오로지 바보처럼 웃으면서 먹고 자고,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그랬던 덕분이었을까? 한 달 후 다시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정기 체크를 했다. 그런데 방사선 주치의가 느닷없이 박수를 치며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말을 한다. 폐에 있던 암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뻤다. 살았구나 싶었다. 내과 주치의도 찾아가 체크를 했다. 방사선 치료 후 910 이었던 간암수치(afp)가 120으로 떨어졌다며 놀라워했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난 2005년, 우리 부부는 내과 주치의로부터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반가운 말을 들었다. 기쁨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

 

“서울대 주치의께서 입원 당시 절망적이었는데 이렇게 좋아진 사례는 십만 명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다면서 앞으로는 혈액검사만 하면서 지켜보자고 하더군요.”

 

차츰차츰 암수치가 떨어지다가 2009년 12월 내 몸에 남아있는 암의 흔적은 암 수치(AFP) 1.3이었다. 주치의는 완치 판정을 내린 상태다. 이 모두가 바보처럼 웃고 산 덕분이라고, 바보죽 식이요법을 꾸준히 실천한 덕분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지금 10년이 넘었지만 암수치 ±1.0대에서 관리하면서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향해 싸우고 있는 많은 환우님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해서 적었습니다. 꼭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암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암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면 그때부터 살 길이 열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와 같이 막다른 골목까지 가는 시행착오를 겪지 마시고 더 늦기 전에, 더 힘들어지기 전에 지금이 적기라 생각하고 미리미리 대처해서 꼭 건강 되찾으시길 기원하면서 더 이상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은 분이 한분도 없으시길 바라고 바라면서, 지금은 많은 환우분들과 전화 상담과 직접 찾아오셔서 조금이나마 낫고자하는 희망을 얻고,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가시면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때마다 아주 많은 보람을 느낀다.

 

제 이야기를 듣고 공감이 가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더니 좋아지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연락이 올때마다 하늘을 날으는 것처럼 더 기쁘고, 보람을 느끼고, 행복한 나날이다.특히 여러 간경화 환우분들이 완치되어 투병기를 적어보내 주셔서 여기 블로그에 올릴 수 있어 다른 간경화 환우들이 암으로 진행이 되기 전에 새로운 세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분들께 감사와 격려를 드립니다. 

 

☞ 암 이기는 비결 12계명  

1. 무조건 웃어라. 억지로 웃는 웃음도 항암제가 된다. 바보가 되는 것이 지름길이다.  

2. 낙천적인 생활습관으로 바꾸어라.  

3. 암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친구로 삼아라.  

4. ‘나는 살 수 있다.’ 확신을 가지고 적극 대처하라.  

5. 암과의 싸움을 장기전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대처하라.  

6. 나에게 맞는 치료방법을 찾아서 100% 믿고 미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7. 가급적이면 내가 하려고 하는 치료법으로 완치된 환자를 한두 명이라고 만나보고 신뢰를 가지고 시작하라.  

8. 밥 한 수저를 먹더라도 150~200번을 꼭꼭 씹어서 먹어라.  

9. 암이 좋아하는 마음, 생각을 만들지 말라. 즉 스트레스를 만들지 말라. 

10. 암이 좋아하는 음식을 절대로 섭취해서는 안 된다. 기름지고, 동물성 지방이 풍부하고 화학적인 것, 인공적인 것은 되도록 멀리하라.  

11. 암환자는 최대한 잠을 많이 자 두어라.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것은 완치의 지름길이다.  

12. 모든 것에 감사하라. 가족, 친척, 친구 등 심지어 사물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감사합니다.♡♡♡  

 

♡행복은 마음이 부른다♡  

마음은 생각을 부르고.. 생각은 현실을 부른다..  

아무리 작은 마음이라도.. 반드시 현실로 일어난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생각을 가져라..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의 마음만 가져라.. 

눈물은 슬픔을 데려오고.. 웃음은 행복을 초대한다..  

밝은 곳을 바라보고.. 희망의 노래를 불러라;.. 

사랑은 소망을 부르고.. 소망은 현실을 완성한다..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다.. 행복은 마음이 부른다..  

좋은글 중에서..

 

전북 전주 유익현 올림 010-9877-7501

 

 

 

NOTE:

암 극복 투병기를 읽으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처절하고 절박하였던 과정을 잘 이겨내고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익현님의 투병기는 많은 암환우님들에게 좋은 사례가 되고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현대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법이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투병한 결과 당당하게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익현님에게 찬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간경화, 간암의 경우 예후가 매우 나쁘고 복수가 찰 경우에는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지만 언제나 바보처럼 허벌레 웃으면서 긍정의 마음으로 투병하였기에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으리라 생각 한다. 지금도 힘든 병마와 싸우는 많은 암환우님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잘 투병하여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혹여 궁금한 부분은 상기 유익현님에게 직접 전화를 하여 조언을 받으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소개 한다. 메디칼 엔지니어 김동우

 

현대의학 자연의학 그리고 의용공학의 세계  http://blog.daum.net/inbio880

 

 

출처 : 현대의학,자연의학 그리고 의용공학의 세계
글쓴이 : 김동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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